꿈은 이루어집니다!
창세기 42:5-17
37장에서 요셉이 꿈을 꾸고 그것을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시는 조롱을 당했지만 그것이 그대로 성취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꿈의 성취
6절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의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37:6-10).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번만이 아닙니다.
43:26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서 그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니”
43:28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비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그들은 동생 요셉에게 계속 절합니다.
요셉과 형들에게 엄한 소리로 꾸짖고 그들은 스스로 ‘종’이라고 지칭합니다(7,13절).
요셉은 꿈꾸던 때를 추억했습니다.
9절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감개무량합니다. 그 때는 그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싶었는데 이렇게 정확하게 현실로 다가오니 그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요셉은 꿈을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은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갖는 꿈만이 진실한 꿈입니다.
그 꿈을 애굽에 와서도 버리지 않았고 감옥에 갇혀서도 잃지 않았습니다. 부자유스런 상황에서도 그의 꿈은 늘 자유로웠습니다.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노예생활은 그를 괴롭혔고 억울한 감옥생활은 그에게 꿈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꿈을 간직한 자로서 삽니다. 꿈이 없다면 살 수 없는 그런 생활을 유지합니다. 꿈과는 전혀 다른 현실입니다. 꿈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꿈과 삶
요셉은 꿈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는 어떤 욕심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꿈을 이룰만한 어떤 구체적인 것을 찾기 위해 찾아다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형들이 자기에게 경배하게 할 것인지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는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상황을 그냥 수납하며 열심히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성취되는 것입니다.
꿈을 꾸십시오. 좋은 꿈을 꾸십시오. 건강한 비전을 가집시다.
때론 좌절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놓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방해자들
요셉의 꿈을 들은 형들은 그 당시 그 꿈을 무시했습니다.
무시한 정도가 아니라 그 꿈을 꾼 동생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37:8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다른 사람의 꿈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밟지 마십시오. 그 꿈을 격려해 주십시오.
동생을 미워한 그들은 애굽에 팔아버렸습니다. 그것으로 요셉의 꿈을 짓밟았다고 생각했습니다.
37:18-20 “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그러나 이들의 이 증오와 악행은 요셉의 꿈을 성취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무시하고 미워하던 그들은 그 꿈의 성취 앞에 무릎 꿇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그 요셉 앞에 빚진 자로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동생 앞에 엎드렸을 뿐 아니라 동생에 의해 그 죄를 깨닫도록 갇히게 됩니다.
만일 형들이 요셉의 꿈을 함께 기뻐하고 격려했더라면 그 꿈이 성취되었을 때 기쁨을 함께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꿈을 깨 버리는 자들로 서 있었기에 동생 요셉의 꿈이 성취되는 순간 두려움과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건강한 꿈은 늘 방해를 받습니다.
주님도 이 세상에서 허황된 꿈을 꾸는 자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방해를 받습니다. 산상설교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에 불과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꿈을 담았습니다. 그 나라를 이루기를 꿈꾸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게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고 방해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미움과 방해는 주님의 꿈을 성취시키는 도구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꿈을 주십니다. 제자들의 꿈을 격려하셨습니다(행 1:8).
이것은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적은 수의 제자들로서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 꿈꾸는 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선교사들의 꿈은 절망적으로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렇게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도 꿈을 가꿉시다.
요셉의 꿈은 계시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꿈입니다. 이제 우리는 계시된 말씀을 통해 도전을 받고 각성하여 우리의 꿈을 만들고 비전을 키워야 합니다.
내 인생을 디자인하는 것이 꿈입니다. 내 인생을 말씀을 따라 디자인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내일의 꿈이 무엇입니까? 나는 나이 많아 이제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하지 마십시오. 죽는 순간까지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며 이상을 가꾸십시오. 자녀들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 잃어버린 것 같은 때에도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한 때 그 꿈을 포기해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로 그들의 꿈은 완성되었습니다. 어렴풋이 갖고 있던 꿈을 분명하게 만져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통한 꿈을 가꿉시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삽시다.
목사는 꿈꾸는 자입니다. 목사의 꿈에 동참하십시오. 종종 허황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계속 꿈꾸는 목사가 있을 때 교회는 교회다워 집니다.
우리교회를 건강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회로 세워가기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더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기를 원합니다.
인간적 욕심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꿈을 계속 키워가겠습니다. 계속 건강한 교회를 위해 교회 재정이 쓰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미 35%이상의 재정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교회로 가는데 기도보다 더 중요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요일, 금요기도회 계속 놓지 않는 이유는 우리 성도들이 그나마 그것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함께 응원하며 힘을 냅시다.
아울러 우리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을 응원합시다. 그들을 위해 격려하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되도록 공부시키고 그들은 건강한 신앙생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가 꿈을 이루게 합시다. 많은 사람의 꿈을 격려하는 사람, 그런 삶을 꿈을 꾸고 이루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그런 꿈을 꾸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펼칩시다.
내가 다스리는 영역이 넓어지는 요셉 같은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