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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으나 보는 야곱

창세기 48:1-22

우리 인간들의 한계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야곱

10절,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나이 많은 야곱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누구나 노안이 올 수 있고 백내장, 녹내장 등의 안과 질환으로 인하여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사람이라면 겪는 한계입니다.

야곱도 이렇게 눈이 어두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 이삭도 눈이 어두웠습니다.

27: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삼상 3: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과 함께 멸망한 제사장입니다. 그는 정말 영적으로 어두웠습니다.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이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봐야 할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들들의 허물과 죄를 볼 수 없어 멸망으로 갔습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조금만 생각해도 보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그 눈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볼 수 없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 눈을 걱정하셨습니다. 본다고 하면서 볼 수 없는 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셨습니다(요 9:39-41).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중 중요한 것이 스스로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눈 먼자라는 것입니다(계 3:16-18). 자기 자신을 볼 수 없었습니다.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판단력, 분별력을 잃게 하고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채 놀라운 복을 잃습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야곱

이렇게 눈이 어두워진 야곱이지만 창세기의 그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영적인 눈은 결코 어둡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눈이 어두었지만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면서 앞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누가 큰복을 받아야 할 자인지를 분별했습니다.

13-14절,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그 뿐 아니라 야곱은 눈이 열려 과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입니다.

16절,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런 고백은 야곱에게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31:42, 32:10).

아울러 야곱은 미래를 봅니다.

자녀들의 앞날을 분명하게 보고 예언적 축복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21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를 받은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그것을 내다보는 야곱입니다.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결국 내 눈의 문제입니다. 내 눈이 어두우면 보이는 것조차 볼 수 없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 생각해 보십시오.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볼 수 없는 것을 야곱이 보았습니다. 젊은 요셉보다 나이 많아 늙고 눈이 보이지 않는 야곱이 놀라운 눈을 가진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존중하십시오.

요셉이 볼 수 없는 것을 야곱이 보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야곱이 보는 것을 눈을 뜬 요셉은 볼 수 없었기에 아버지를 막으려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도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눈떠야 보는 것입니다.

야곱은 노년에 영적 눈이 열렸습니다.

그 아버지 이삭은 노년에 눈이 어두운데다 영적으로도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실패합니다. 누구에게 축복해야 하는지를 몰랐고 앞에 있는 아들이 에서인지 야곱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다릅니다. 앞에 있는 아이들이 큰아이인지 작은 아이인지 알았을 뿐 아니라 누가 오른손의 복을 받아야 할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영적 눈을 열어 사람도 분별하고 무엇이 보물인지 보물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 중심을 봅니다. 속을 봅니다. 영적 눈은 속을 봅니다.

교회를 볼 때 무엇을 봅니까?

속이어야 합니다. 예배당을 보지 맙시다. 속을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를 보아야 합니다. 그 교회가 주님이 계시는 공동체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건물에 계시겠습니까? 건물이 화려하면 거기 하나님이 계실까요? 화려한 금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떠나시니 성전은 황폐했습니다.

우리가 바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시각을 갖는 것이 영적 눈입니다.

그 영적 눈을 갖기 위해 목회자가 애를 씁니다. 일반 성도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말씀을 통해 보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 말씀의 깊은 뜻을 찾아내고 그 말씀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설교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눈이 열리기를 늘 기도해야 합니다. 이 영적 눈이 밝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또 흐려지지 않도록 늘 영적 건강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바른 길을 제시하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설교자요, 목회자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눈이 어두우면 함께 실패합니다.

주님이 그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마 15: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건강한 눈을 관리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니 그 말씀이 내 눈을 밝혀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영적으로 눈 떠야 합니다. 영적 맹인으로 살지 마십시오. 눈을 아직 뜨지 못했으면 인도를 받으십시오. 손을 잡아 달라고 하고 가르쳐 달라고 하십시오. 다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교만하면 넘어집니다. 사고가 납니다. 위험합니다. 나의 판단력이 부족함에도 그 부족한 판단을 가지고 교만하게 행동하면 넘어집니다.

영적 눈을 열어 사람도 분별하고 무엇이 보물인지 보물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안이 열리면 하찮은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을 뿐 아니라 보물을 잃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건강하게 이뤄갈 수 있습니다. 눈을 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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