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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사람들 창세기 49:5-7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 나옵니다. 그런데 축복이 아닌 저주성 예언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에서 복을 받지 못한 세 아들이 있습니다. 장자, 그리고 차남과 셋째 아들입니다. 르우벤, 시므온 그리고 레위입니다. 장자는 지난주에 살핀 대로 탁월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그리고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는 본문 7절에 나오는 대로 흩어지는 저주를 받습니다. 심각한 저주입니다. 저주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이런 저주성 예언을 받았을까요? 폭력의 도구로서의 칼 5-6절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시므온과 레위의 칼이 폭력의 도구였다고 말합니다. 어떤 두고든지 악을 위해 사용하면 악한 도구가 되고 맙니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악하게 사용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분노대로 그 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34장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야곱의 딸이자 시므온과 레위의 여동생인 디나가 세겜에서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야곱이 세겜에 머무르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거짓된 약속을 하고 칼을 들고 살육을 행했습니다. 할례를 받으면 함께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고 고통에 시달릴 때 그들은 칼을 가지고 가서 그들을 살육했습니다(34:25-29). 시므온과 레위는 복수를 했습니다. 다 죽였습니다. 무자비합니다. 그리고 약탈까지 합니다. 복수는 그렇습니다. 훨씬 잔인해집니다. 상대가 내게 행한 것보다 더 잔인하고 더 무자비합니다. 그렇게 세겜을 짓밟았습니다. 그래서 이겼나요? 그러나 그것이 이긴 것이 아닙니다. 세겜남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개가를 부른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이로 인해 공포에 떱니다(34:30). 이긴 것 같은데 불안합니다. 두려움이 그를 덮쳐버립니다. 아버지 야곱은 몹시 공포에 떨었고 자기 아들들의 능숙한 속임수와 끔찍한 살육에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아들들의 짐승 같은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했던 형들이 악한 짐승처럼 자기 동생을 죽이려고 하다가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저지른 이 두 아들에게 아버지는 죽기 전에 저주성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칼은 결국 나를 무너뜨립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칼을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가지고만 있어도 칼로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사무엘상에 보면 사울왕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의로운 다윗을 칼로 위협하며 평생을 삽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기 칼에 죽고 맙니다. 자기 뿐 아니라 세 아들도 같이 죽고 맙니다(삼상 31:3-6). 우리의 인생에서 칼을 손에 잡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품는 칼이 있습니다. 시기, 미움, 증오, 복수하고 싶은 마음 등이 마음의 칼일 수 있습니다. 그 칼을 품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죽이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결국 나를 상하게 할 위험이 높습니다. 이기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이긴들 뭐합니까? 손에 피를 묻힌 채 승리한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요? 내가 항상 이겨야 한다거나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도 누릴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권면합니다.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을 악으로 갚다가 내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결국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사용하고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맙니다. 결국 두 사람은 평생의 짐을 짊어졌습니다. 그것이 당사자인 자신들 뿐 아니라 오고 오는 후손들에게까지 그 짐을 짊어지게 했습니다. 흩어지는 저주 이런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 야곱의 저주가 무엇입니까? 7절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쳐 살육을 저질렀는데 결국 흩어지는 저주를 받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며 인구조사를 했는데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2,000명에 불과했습니다(민 26:14). 또 다른 지파처럼 땅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하고 겨우 생계만 유지할 정도로 몇 개의 성읍만 할당 받았습니다(수 19:1-9). 레위 지파 역시 문자 그대로 자기 땅을 분배 받지 못하고 형제 지파의 땅으로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 야곱의 예언대로 시므온과 레위의 후손들이 흩어지는 상태가 됩니다. 칼 때문에 생긴 안타까운 일입니다. 복수의 칼로 말미암아 미래가 바뀌고 말았습니다. 저주를 복으로 바꾼 또 다른 칼 그런데 여기서 오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레위 지파의 흩어짐에 대해 언급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레위 지파가 저주를 받았는데 어떻게 제사장이나 성전 봉사자들이 되었을까요? 모세가 레위지파고 사무엘이 레위지파입니다. 아론이 모세의 형으로 제사장의 반열에 서게 되며 영원히 그 후손들이 제사장이 되고 레위 지파가 성전을 위해 봉사하는 지파가 됩니다. 레위지파만이 제사장이요, 성전봉사자요, 찬양대가 됩니다. 구별된 복을 누립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레위 지파는 뒤에 가서 회복될 기회를 얻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운명을 바꾸는 헌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들은 영적인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동안 아론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극에 달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이스라엘의 죄를 회복하기 위하여 주동자들을 진멸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선두에 레위 지파가 섰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 헌신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출 32:26-29). 레위는 칼을 차고 세겜 사람들을 죽이므로 흩어지는 저주를 받았지만 다시 칼을 들고 하나님께 헌신하므로 흩어짐을 복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회복한 레위지파가 복을 받고 영적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에 모세의 레위 지파를 향한 축복이 크게 세 가지가 나옵니다(신 33:8-11). 먼저 그들이 제사장이 되는 복을 누립니다. 대를 이어 그들만이 제사장이 됩니다. 아울러 재산이 풍족해지는 복도 받습니다. 땅을 분배받지 못한 이들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지파가 그들을 먹여 살립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대적하는 자들의 허리를 꺾는다는 복입니다. 경건한 사역자들을 대적하는 자들의 허리는 하나님이 꺾어주십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제사장을 핍박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꺾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레위 지파는 야곱의 예언대로 흩어져 사는 것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언자적 혜안으로 선언한 야곱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회복을 했어도 야곱의 말씀대로 흩어짐을 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이 흩어짐이 저주가 아닌 가치 있는 흩어짐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교회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말씀을 맺읍시다. 시므온과 레위, 그들은 칼을 휘두르다가 흩어지는 저주를 받습니다. 레위가 그것을 극복하기는 하지만 흩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칼을 잘못 사용하면 내가 손상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칼을 내려놓고 사랑을 품읍시다.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고 복수하려는 마음은 나를 해롭게 할 뿐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 산상설교에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그렇게 사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행복한 삶을 살아갈 비결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면 원수가 잘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비결입니다. 행복하게 삽시다. 행복한 가정, 교회, 세상을 만드는 방법 칼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칼을 품는 한 내가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를 통해 주시는 중요한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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