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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죽음

창세기 50:22-26

창세기의 마지막은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요셉을 입관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왜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것일까요?

죽음의 의미

창세기의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천지 창조하신 하나님, 그 분은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관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신 중요한 유일한 명령이 무엇입니까?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럼에도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맙니다. 그것을 먹은 후 사람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족보는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창세기 5장 이야기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죽었고 가장 오래 969년을 산 것으로 기록을 세운 그 사람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었다는 것으로 성경의 첫 족보는 기록됩니다.

신약의 족보와는 전혀 다릅니다. 신약의 첫 족보 마태복음 1장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거기는 생명뿐입니다. “낳고” 또 “낳고” 또 낳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죽음뿐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그 죄의 결과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여기서 창세기는 창세기의 구석구석에 암시되어 있는 살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퍼즐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3장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아 버릴 것을 예고하며 예수님을 통해 사탄과 사망의 세력을 밟아버릴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5장의 모든 사람의 죽음이 기록된 족보에 죽지 않고 옮겨가는 사람 에녹을 보여줍니다. “죽었더라”로 끝나는 족보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로 끝나는 사람 에녹을 보여주면서 희망을 드러냅니다.

다 죽는데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죽지 않는 길이 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 그 후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을 예고합니다. 그 씨 이삭은 단순하게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는 아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삭이 죽은 자와 같은 아브라함을 통해 태어나면서 희망을 보여줍니다.

생명의 길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다 죽는 것으로 끝을 내면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끝내게 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창세기를 훑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흐름이 그런 것입니다. 신약을 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창세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죄로 인한 죽음과 그 죽음이 죄의 결과요 심판이 아닌 복된 것으로 바꿀 그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요셉의 죽음을 정리해 봅시다.

이 죽음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권력과 부를 가져도 죽습니다.

누구라도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권력과 부를 가져도 사람은 다 죽습니다.

요셉의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당시 최강대국인 이집트의 권력자입니다.

41: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이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힘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죽습니다.

더욱이 아브라함은 175년, 이삭은 180년, 야곱은 147년을 살았지만 최고의 힘을 가지고 좋은 음식 많이 먹었을 요셉은 가장 짧게 살았다는 것도 의미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모세도 12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힘이 있고 가졌다고 오래 살거나 죽지 않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인 다윗의 고백을 봅시다. 죽음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한 말씀입니다.

왕상 2:1-2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죽음이란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흔적을 남기고 죽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다 용서하고 떠났습니다.

이 요셉은 죽기 전에 중요한 일을 하고 갔습니다. 앞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형들의 악행을 다 용서했습니다. 누구하고도 풀지 못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누구에 대해서도 원한이 없습니다(창 50:19-21). 50장에서 죽음이 임박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삶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악한 일을 겪을 때 이미 그 때 용서하고 풀고 마음에 담지 않았습니다(45:5).

이런 요셉은 주님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앞두고 하신 말씀 중 하나가 용서입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새”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나에게 해를 끼치는 자를 용서하고 풀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본받은 스데반도 그렇게 죽습니다.

행 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의 마지막은 행복했습니다. 악한 자들에게 이를 갈고 눈을 부릅뜬 채 죽지 않습니다. 행복하게 잠을 자듯 죽습니다.

다 용서했고 다 풀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모습입니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많은 사람과 풀지 못하고 맺힌 것이 많다면 하늘과도 풀리기 어렵습니다.

하늘이 풀리지 않는 한 인생은 결코 풀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천국처럼 사는 비결은 이 땅에서 늘 풀고 사는 길 외에 없습니다.

선을 베풀고 갔습니다.

21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주는 자였습니다. 베푸는 자로 살았습니다. 용서하는 정도가 아니가 악에 대해서도 선으로 갚았습니다.

우리가 기회 있는 대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의 삶의 시간들은 선을 행할 기회입니다. 악을 행하고 갈등하고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가능한 대로 힘을 다하여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선한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선한 삶을 기억해주십니다(마 10:42, 25:35-36).

우리가 죽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우리의 행위가 기록으로 남아 있음을 암시하는 말씀이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계 14:13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우리의 삶의 흔적이 아름답게 합시다.

후손이 잘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의 후손이 잘되었음을 보여주면서 창세기가 마무리 됩니다.

이렇게 산 요셉의 후손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22-23절,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110년을 살면서 후손의 번성을 보았습니다. 오래 살면서 자손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아야 복이지 않겠습니까?

내가 열심히 아름답게 사는 것은 후손에게 복을 이어지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요셉은 자자손손 번성을 보았고 모든 것이 풍성한 삶도 당연히 뒤따랐습니다.

우리의 삶의 뒤에 남는 복이 있어야 합니다. 후손들이 잘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한 사람들이 누리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나의 후손들이 내 덕에 복 받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출 20:5-6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천대의 복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편의 기록을 볼까요?

시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시 112:1-2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이 후손의 복입니다(삼하 7:12-15).

혹시 후손이 잘못해도 그 복을 거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후손들이 솔로몬부터 시작하여 허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왕위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후손의 복은 최고의 복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복 받게 합시다. 후손에게 최고의 유산을 물려주는 방법은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답게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누군가를 기쁘고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것들이 그대로 후손들에게 열매로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희망을 안고 갔습니다.

요셉이 죽지만 희망을 안은 채 갔습니다(24-25절).

그는 후손들이 약속의 땅에 돌아갈 희망을 가슴에 안은 채 하나님께 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요셉도 신뢰하였던 것입니다.

그 신뢰의 표현으로 중요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유골이 애굽의 객지에 남기를 원하지 않았던 요셉은 그 후손들이 출애굽의 그 날에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약속의 땅에 갈 것을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출 13:18-19).

죽음 후에도 그 희망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요셉의 죽음을 살폈습니다. 우리들도 요셉처럼 복된 죽음을 준비합시다.

창세기가 그려주는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이 죄의 결과가 아닌 선물이요, 복이 되는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심판도 멸망도 그리고 저주도 아닙니다.

바울 사도의 정리를 봅시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결과로서의 사망, 그러나 예수 안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우리들의 죽음은 천국 입성의 문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영생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행복한 죽음을 준비합시다.

슬픔의 죽음, 절망의 죽음이 아닌 승리의 죽음, 감격의 죽음, 기대되는 죽음을 맞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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