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라!(레위기 19:32)
2013.05.14 18:45
하나님을 경외하라!
레위기 19:32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어떤 삶이어야 할까요? 이 말씀은 그 구체적인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버이 주일에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다짐합시다.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경외란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을 나타내는데 쓰는 용어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여 섬겨야 합니다. 경외는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신앙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주일을 준비하는 자세, 두렵고 떨림이 있습니다. 토요일이면 긴장됩니다.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늘 긴장입니다. 늘 두려움입니다. 그것이 경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 경외입니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경외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떤 말씀도 그대로 따르는 그 자세가 경외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히브리 산파들이 애굽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일이 나옵니다.
애굽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 히브리사람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출 1:17) 때문에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출 1:21). 하나님 경외가 그런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세도 그래야 합니다. 경외가 표현되어야 합니다. 기쁨과 감격 속에 예배하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존중하는 것이 경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될 삶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앞서서 해야 할 일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라는 말씀이 “네 하나님 경외하라”는 말씀보다 앞에 나옵니다. 순서적으로 앞에 나오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과 함께 나열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해야 할 일이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어른에 대한 예의를 하나님 경외하는 것과 같이 취급하셨다는 것입니다.
레위기에 이와 같은 패턴의 말씀들이 나옵니다.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부모에 대한 자세가 ‘경외’라고 표현할 뿐 아니라 그 뒤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으로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계속 나옵니다.
19: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귀먹은 자가 듣지 못한다고 그를 저주하는 일을 하지 말며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아 괴롭히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과 함께 나옵니다.
또 보시지요.
25:17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웃을 속이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속인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레 25:3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어려운 형편의 형제들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보살피는 것이 하나님 경외라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또 봅시다.
레 25:43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39절 이하부터 나오는 말씀인데 형제들이 가난하게 되어 몸을 팔아 종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처럼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희년까지 있다가 자유하게 해주라는 것이며 종으로 있는 동안도 엄하게 부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른에 대한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사도요한의 가르침을 기억해 봅시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 증거는 눈에 보이는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조차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가운데 주님이 책망하신 못된 관습이 이어져 내려온 것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고르반이라는 유전입니다(막 7:10-13). 고르반은 헌물이라는 뜻입니다. 레위기와 민수기 등에 나타나는 여호와께 드리는 헌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레위기에 40회, 민수기에 38회나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원래는 부모님께 드려야 할 물질을 하나님께 바쳐 헌물로 드리면 부모 부양의 의무가 면제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습관이 고르반입니다. 매우 가증스러운 태도입니다. 부모에게 드릴 것을 왜 하나님께 드리고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합니까? 주님께서는 이런 전통을 이어가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른에 대한 공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른이란 먼저 태어난 분입니다. 태어나는 순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센머리가 나옵니다. 아름다운 머리는 아닙니다. 나이가 들었고 세월을 느끼게 하는 것이 센머리입니다. 성경은 이 센머리를 매우 귀하게 여깁니다.
잠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 20:29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그 센 머리가 난 노인 앞에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어서는 것은 존경의 표현입니다. 누구든 그 흰머리 앞에 일어서야 합니다.
왕이 된 솔로몬이 그의 어머니가 들어오자 일어나 영접하고 정한 후에 자리에 다시 앉는 것은 바로 이런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왕상2:19).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고”
또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노인의 얼굴과 젊은이의 얼굴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의 얼굴은 피부가 팽팽하고 젊은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름이 생기고 젊음을 찾아 볼 수 없는 얼굴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연륜이 젊음을 시들게 하고 늙은 얼굴이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더라도 그 연륜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에 나오는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아버지가 잘못했어도 그 아버지를 멸시한 자는 결국 저주를 받고 맙니다.
“나는 여호와니라”
이 말씀 후에 이렇게 확실하게 도장을 찍고 있습니다. 권위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요?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손해입니다.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순종하면 복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센 머리와 노인의 얼굴은 부모를 넘어섭니다. 남의 부모도 존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부모와 어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노령인구의 증가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노인에 대한 존중이 점점 사라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노인을 학대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어른을 공경해야 합니다. 노인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매우 중요한 자세입니다.
사람을 예의롭게 대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보인다면 쇼일 뿐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그 분의 말씀대로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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