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월 / 출애굽기 33:20-23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 누가복음 9-12장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 앞에 나가거나 직접 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조차도 하나님의 보좌를 본 후 죽을 것을 알고 탄식했습니다(사 6:1-5). 모세에게도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반석에 서면 등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을 직접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등은 뒷모습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지금 하시는 일보다 이미 하신 일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지나고 나니 그때 그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뒤늦게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뒷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은혜로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보다 뒷모습을 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뒷모습이라도 보고 깨닫는 사람이 복입니다. 그조차 깨닫지 못하고 볼 수 없는 어두운 사람이 많습니다. 모세이기 때문에 뒷모습이라도 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그 뒷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뒷모습을 깨닫고 감사하다가 천국에 가서 그 얼굴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10월 29일 화 / 출애굽기 34:1-3 결코 없어지지 않을 말씀 / 누가복음 13-16장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기록해 주신 십계명 돌판(32:16)을 받아서 가지고 내려오다가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보고 돌판을 던져 깨뜨리고 말았습니다(32:19). 그것을 앞에서 보았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깨뜨린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린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 건이 해결되고 난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 명령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모세에게 그 돌판, 모세가 깨뜨린 돌판과 같은 것을 만들어 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시 기록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다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처음 썼던 그 말씀입니다. 이것은 처음에 주셨던 그 말씀은 결코 사라지거나 축소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모세가 깨뜨리거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괴하여도 그 말씀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룬다”는 것입니다(마 5:18). 말씀은 결코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말씀을 버려도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말씀의 능력과 효과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아울러 말씀대로 살면 우리 인생도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변해도 말씀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리임을 잊지 맙시다.
10월 30일 수 / 출애굽기 34:4-9 천대까지 베풀 인자 / 누가복음 17-20장
모세는 다시 두 돌판을 깎아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갔습니다. 말씀대로 가장 빠르게 순종하는 자세가 아침 일찍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셨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방법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구름이었습니다. 인공적 구름이 아닌 하나님께서 구름을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여호와 자신을 선포하셨습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임을 선포하셨습니다(6절). 완전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 대하여는 참 인자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죄에 대하여 인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약하고 모자람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약함에 용납하지 못하고 모자람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 대하여 이렇게 모든 것을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더 나아가 조금이라도 잘하면 “인자를 천대까지”(7절)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천대까지”란 영원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목이 곧고 악한 이스라엘을 향해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도 그렇습니다.
10월 31일 목 / 출애굽기 34:10-12 쫓아낼 사람들 / 누가복음 21-24장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언약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악하고 잘 될 가능성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지고 또 놀라운 일을 펼쳐서 그들을 도우실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도우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에서 모든 대적들을 쫓아낼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아모리, 가나안, 헷, 브리스, 히위 그리고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모든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어떤 대적도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깨우침을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가나안의 어떤 사람들과도 손잡고 그들과 섞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 손잡을 수 있고 그들과 혼인하거나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무가 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세상에 발목 잡히지 맙시다. 세상을 좋아하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십니다.
11월 1일 금 / 출애굽기 34:13-17 깨뜨려야 할 것 / 요한복음 1-3장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원주민들과 어떤 관계를 맺든지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결혼 등의 인연을 맺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는 우상과 제단, 그리고 어떤 신상이든지 가리지 말고 모두 깨뜨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혹시라도 좋아하고 쫓아가고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진노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상을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발견하는 즉시 깨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32장에서 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깨뜨렸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린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계명을 그대로 다시 돌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돌판에 새긴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정말 깨야 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가나안 사람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깨뜨리고 나무로 만든 것은 찍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무조건 깨고 없애야 합니다. 내게 연결되어있는 것이라면 끊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 삶에서 깨뜨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1월 2일 토 / 출애굽기 34:18-20 무교절과 첫 태생 / 요한복음 4-6장
무교절에 대한 말씀입니다. 무교절은 일주일 동안 무교병을 먹는 절기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이후 일주일 동안 지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고 그것과 연관하여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먹으면서 지내는 것입니다. 누룩이 상징하는 죄를 삶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다짐을 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를 받아들이면 애굽에서 얽어 매여 고생한 것처럼 사탄에게 얽어 매인 채 죄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무교절과 관련하여 모든 첫 태생은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문에 발랐습니다. 그 피는 애굽 전역에서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죽을 때 죽지 않게 하는 놀라운 생명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난 것에 감사하면서 처음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처음 태어난 모든 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구별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우선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건강한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