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마가복음 14:12-26)
2008.08.28 09:44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 마가복음 14:12-26 >
주님의 마지막 만찬이 될 유월절 준비를 위한 방이 어떻게 마련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방을 준비한 제자들과 방을 제공한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헌신을 살펴보겠습니다.
객실을 준비하는 제자들
12절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이것은 1,2절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행위와 비교됩니다.
그들은 이틀만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인데 절기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어떻게 예수님을 죽일지를 연구하고 준비하느냐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유월절 준비를 하기 위해 애씁니다. 더욱이 어려운 형편에서 준비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과는 형편이 다릅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정성껏 준비된 예배가 있습니다.
이들이 방을 준비하는 가운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13-16절). 여기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제자들은 방을 구하기 위해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사람을 찾아다니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주님의 말씀대로만 했습니다. 말씀을 따라 갔더니 그 말씀하신대로 적절한 방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말씀대로 가지 않으니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가면 내게 꼭 맞춘 것같은 사람, 상황, 장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 방을 준비하여 드린 사람을 살펴봅시다.
방을 준비하여 드린 사람
“준비한 큰 다락방”을 드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식탁과 의자 등이 준비된 방입니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이 사람을 많은 분들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로 추측합니다. 물동이를 가지고 가던 남자는 마가고 집주인은 그 어머니 마리아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제자들은 이 집에서 만찬을 하면서도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 도망가고 숨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그들은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마지막 당부를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어떤 장소를 떠올렸겠습니까?
바로 이 방입니다. 큰 다락방이었기에 120명이 모이기도 적절했을 것입니다.
그 방에서 놀라운 일을 체험한 후 그 방은 초대교회의 모임 장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기도하기 위해 교회가 모인 곳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행 12:12).
이렇게 단순하게 방을 드렸는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고 만찬의 의미는 특별했습니다. 주님께 드리고 나면 놀라운 일을 봅니다.
더욱이 마가는 베드로에게는 아들같은 존재입니다.
벧전 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그가 마가복음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의 도움을 받았고 신앙적 지도를 받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음식먹을 방을 준비하러 간 사람들의 이름이 누가복음에 의하면 베드로와 요한입니다(눅 22:8). 베드로와 만난 마가가 후에 베드로의 제자가 되었을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이 헌신자는 어떻게 방을 드릴 수 있었습니까?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14절)는 주님의 말씀에 주저하지 않고 준비된 방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방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객실”이 어디 있냐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것을 주님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 앞에 큰 다락방을 드린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미 주님을 따르던 여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집에 모시고 싶어 준비했었던 방인데 주님이 요청하셨고 기꺼이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쓰시기를 원할 때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살펴봅시다.
엘리사를 위해 방을 준비한 수넴 여인이 있습니다.
이렇게 방을 드린 신약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중요한 인물, 자주 장사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습니다(행 16:15). 그 외에도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 집을 그렇게 드렸습니다. 빌레몬이 그랬고 3세기까지 예배당이 지어지기까지 많은 성도들이 자기 집을 예배장소로 제공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주님을 위한 방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 하나님을 섬긴다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마음에 주님이 거하실 공간은 없었습니다. 이미 오신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를 이용하여 세속적인 욕구가 꿈틀거릴 공간은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공간은 누가 차지하고 있는지 생각합시다.
심지어 주님이 지적하신대로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18절).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을 죽일 생각을 하고, 제자 중 하나는 주님을 팔아 버릴 자고, 다른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할 자임을 아시는 주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머리 둘 곳 없는 주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객실이 없었습니다(눅 2:7).
주님께서 또 안타까워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우리 주변을 맴도시며 주님께서 이렇게 쓸쓸해하지 않을지요?
그런 주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실 객실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름도 나오지 않는 사람이 큰 방을 준비했다가 드렸습니다.
우리의 마음 공간, 삶의 공간에 주님의 공간을 만들어갑시다.
주님이 우리의 삶에 꽉 차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찬에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해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22-24절). 이렇게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드릴 준비를 합니까?
사람들이 볼 때는 보잘 것 없어도 내가 잘 하는 것, 내게 가장 귀한 것을 내어 드리는 것이 내 마음에 객실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내 마음에 객실을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을 느끼고 감격하면 내 것을 내 드리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모시면 내가 행복합니다
사실 이렇게 객실을 드리면 주님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은 것입니다. 주님이야 불편하지요. 왕궁에서 거하던 왕자가 초라한 시골집에 가서 산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런 처지이지요.
내 삶에 주님이 들어와 계시는 것은 내가 천국을 누리는 복입니다. 천국의 식탁에 미리 앉을 수 있고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됩니다(계 3:20).
주님이 들어오시면 우리의 삶에 천국이 펼쳐집니다.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내 마음에 주님의 객실이 있습니까?
내 가정에 주님의 객실이 있습니까?
내 자녀들 속에 주님의 객실이 있습니까?
기꺼이 드리고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편안히 계시게 합시다. 그 분이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먹고 마시게 합시다. 다 잃어도, 다 내 몰아도 주님을 모실 객실만 있다면 우리 인생은 천국입니다. 주님과 함께 먹고, 주님과 함께 마시고, 주님과 함께 잠자고, 주님과 함께 일하는 복된 공간을 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