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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구원하였으되"(마가복음 15:22-32)

2008.10.22 21:05

김관선 조회 수:1457

 

“남은 구원하였으되”

< 마가복음 15:22-32 >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말씀이 조롱하는 자들을 통해 선언되고 있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였습니다. 군중들과 제사장들 모두가 주님을 조롱했습니다(29-31절).

그들의 조롱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 핵심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구할 능력이 없습니까? 이미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일으키고 눈먼 자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 힘을 희생합니다. 나를 죽여 세상 사람을 살리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있으면 나를 위해 쓰려고 합니다. 나를 위해 힘을 가지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내가 죽지 않아야 힘을 과시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을 죽이고 내가 살아야 복으로 여깁니다. 예수 믿고 살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힘은 여전이 세속적입니다. 세속도시에 갇혀 살면서 우리는 세속적인 그리스도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나를 위해 살지 마십시오. 내가 죽어도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기쁨 속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조롱하는 소리에 또 하나의 시험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32절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주님께서 3년 전에 광야에서 마귀에게 당하신 시험도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마4:3,6).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시험거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내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을 통해 믿게 하고 싶은 욕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 묵묵히 희생하시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죽는 것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고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은 이런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본 백부장의 고백이었습니다(39절).


희생하는 삶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살리는 것을 조롱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자기도 살기 힘든데 남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입니다.

“네 앞가림이나 해!”

“네 주제에 누군 돕겠다고!”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이 있고 그런 남편이 있고 그런 아이들이 있다면 응원하십시오.


어제 10월 18일은 고당 조만식 장로님의 순국 58주기입니다. 금요일에 추모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을 삶의 아름다운 면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죽여 민족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분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고려호텔에 감금당하시고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인 고당. 월남을 권유하는 제자들, 그러나 월남을 선택하지 않고 북한에 남아 그 형제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신 고당,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자신을 구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자신을 죽여 나라를 구하고 동포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1950년 후퇴하는 공산군들에 의해 희생하였습니다.

그의 일화 중에 감옥에 갇혀서도 자기 혼자 먹기도 힘든 그 밥을 나눠 옆의 사람을 주었던 것은 매우 감동입니다. 그런 모습에 그의 삶이 담겨있었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으로 평양 형무소에서 10개월 옥중생활을 했는데 가장 힘들었을 때의 고당의 삶은 여러사람들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해 5월쯤부터 고당과 같은 병감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 인상부터가 마음이 착하고 지극히 인자한 분이면서도 내강한 분이었습니다. 그때 감옥에선 짠밥이라고 해서 어린애 주먹만한 수수 싸라기가 섞인 밥을 돌려주었는데, 고당은 그 형편없는 것마저 우선 딱 반으로 갈라서 그 반쪽은 젊은 사람에게 주고 나머지를 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음식 절제에 대한 것만으로도 우리보다 여러 걸음 앞선 분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한 것이 신비한 기적입니다. 기적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구체적인 실천을 합시다


주님처럼 큰 것 생각하지 마십시오. 작은 것,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부터 하십시오. 주차장에서 나의 양보로 누군가가 편하게 주차하도록 하시고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누군가가 앉은 것에 기꺼이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내야 할 세금이 많아지는 것으로 인해 세금 한 푼 못내는 사람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기뻐하고 의료보험료가 많이 들어도 몸 아프고 돈도 없어 의료혜택 받기 힘든 분들이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기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이 내고 병원 한 번 가지 않으니 억울해 할 수 있지만 그것 복입니다. 대체로 부자는 병에도 잘 안 걸리고 병원에 갈 일도 많지 않습니다. 가난해서 난방도 못해서 감기도 자주 걸리는데 약 한 번 쓰기 어려운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런 것 생각하면 감사하지요. 농지 직불금 받아서 세금 줄이려는 마음으로 살지 말고 내가 나눌 수 있는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이 십자가의 의미를 실천하는 삶이지요.


이렇게 살면 죽고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열매를 보여주신 것이 부활 승리입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열매가 있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잃지 않습니다. 반드시 놀라운 열매가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 주님을 죽이는 자들


주님은 자신을 죽여 다른 사람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아래의 바로 주님이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람들을 보십시오(22-28절).

그들은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의로우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입니다.

이런 일은 세상에 계속 일어납니다. 얼마나 많은 보물 같은 분들이 역사 속에서 희생되었는지 모릅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욕심으로 인하여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수많은 가치가 죽어버립니다. 돈에 묻히고 권력욕망으로 인해 가족도 죽이고 친구도 배신하고 사랑도 짓밟아 버렸습니다.

우리가 못 박아 버린 보물은 없는지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아래서는 그 분의 옷을 누가 가질지 제비를 뽑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내 것을 챙기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죽으심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일입니다. 자기들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주님을 죽인 것입니다.

주님을 죽이고라도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물질을 위해,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의도 죽이고 진리도 밟아 버리고 욕망을 좇습니다.

세상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 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불의를 좇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확실한 죄인들 속에 그냥 버리고 자기들의 이익을 좇습니다. 알면서도 입을 다물어 죽입니다.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역시 세상의 원리입니다.

혹시 나는 좋은 학교 다닐 수 있었고 많이 갖고 있고 많이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더 많이 나누라는 책임을 진 것입니다. 그것을 은혜로 여기면서 섬기면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더 많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위의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목적과 인생들의 목적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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