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봉사자 요셉(마가복음 15:42-47)
2008.11.11 20:02
“마지막 봉사자 요셉”
< 마가복음 15:42-47 >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주님의 시신을 장례 치루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 21:23에 의하면 나무에 달린 자의 시체를 밤새 두지 못합니다. 그 땅을 더럽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신을 장례 치르는 것은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등장합니다.
갑작스런 등장인물
43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이렇게 늘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나귀가 그렇고 다락방이 그렇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또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조금만 더 늦어도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촉박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도망가도 흩어져 버린 상황에서 생각도 못한 숨어있던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주님을 위한 마지막 봉사를 했습니다. 우리도 정말 주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그렇게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
1) 존경받는 공회원
43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공회는 유대인의 통치단체로서 산헤드린이라 부른 유대 최고 법원이기도 합니다. 막장한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힘을 가졌지만 존경은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힘도 갖고 존경도 받는다면 참 복입니다.
어떻게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눅 23:51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선하고 의로운 사람을 살므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존경받은 의원이 빌라도에게 요청하니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2) 드러내지 못했던 제자였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그가 주님의 제자였다고 말합니다(마 27:57).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제자입니다. 왜 드러내지 못했을까요? 요한복음에 보면 유대인들이 두려워 숨겼다고 말합니다(요 19:38). 당시 주님을 믿는 관원들이 있었지만 의회에서 쫓겨나는 것이 두려워 드러내지 못한 자들이 있었습니다(요12:42). 비겁한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상당한 위험 속에서 숨겨왔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당돌하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시신을 장례 치릅니다. 지금은 제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위험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주님을 위해 뭔가 해도 아무런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때입니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험 부담을 그냥 다 안았습니다. 그는 이 일을 하므로 공회에서 쫓겨나면서 권력도 부도 잃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순간에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주님을 위한 마지막 봉사를 했습니니다. 그는 드러내지 못했음을 미안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잃더라도 더 늦기 전에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3) 부자로서 할 일을 했습니다
46절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세마포를 준비하고 자기를 위해 준비했던 무덤을 드렸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마 27:57).
그가 드린 무덤은 바위에 판 새 것이었습니다(마 27:60, 눅 23:53, 요 19:41). 이런 무덤은 부자만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기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새무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주님을 위해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은 그렇게 쓰라고 주신 것이고 시간도 건강도, 권력도, 건강도, 힘도 그렇게 쓰는 것이 부자의 삶입니다.
요셉이 물질을 바르게 쓴 복된 사람입니다.
그의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평가는 이 물질 사용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의 봉사에 동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 19:39-40에 보니 니고데모가 그랬습니다. 그도 관원이고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처럼 주님을 존경하던 자였습니다. 이들이 함께 그 봉사를 했습니다. 어려운 일, 그러나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용기가 생기는 법입니다.
그는 마지막 봉사의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는 아마 후회도 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비밀리에 주님을 따랐는데 이렇게 죽으므로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계실 때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이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후회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에도 기회가 자주 오지 않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마지막 기회가 오기도 합니다. 매 순간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오늘”이라는 기회는 내게 마지막입니다. 그것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내일은 내일 일뿐입니다.
아울러 이 요셉은 이렇게 마지막 봉사자로 기록될 뿐 아니라 그는 사실상 자기의 마지막 모든 것을 다 드린 사람입니다. 그는 이것을 하므로 정치적으로 자신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드린 사림입니다. 마치 주님이 우리를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주신 것처럼.
재미있는 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실 때는 의로운 요셉에 섬겼습니다(마 1:19).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이 주님의 탄생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의 마지막 죽음에서도 의로운 요셉이 섬기고 있습니다. 요셉에서 시작되어 요셉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요셉에 되고 우리의 힘이 아름다운 기회에 아름답게 사용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주님이 죽고 난 후 그의 몸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살아있는 몸인 교회를 섬기는 일을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그 몸을 건강하게 세워 이 세상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