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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칼(삼상21:1-9)

2004.07.08 10:29

관리자 조회 수:2003

 

“빵과 칼”

< 사무엘상 21:1-9 >

다윗의 도망자로서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다윗을 훈련시키고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서의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문제를 만날 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고 갈등하지 마십시오. 결과를 바라보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윗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훈련을 통해 커집니다.

제사장에게로 간 다윗

다윗은 하나님의 성막이 있던 놉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거기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어려울 때 선지자 사무엘을 찾고 친구 요나단을 찾았던 다윗은 오늘 제사장 이히멜렉을 찾아 갑니다.

그는 이렇게 찾아 위로받고 도움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대상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힘들 때 누구를 찾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의 진정한 선지자였습니다. 참된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 분을 찾으십시오. 완전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빵과 칼을 구하는 다윗

그런데 다윗이 제사장을 찾았으나 그에게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부탁하고 영적으로 힘을 북돋아 주기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상담을 하고 예배를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다윗은 오직 먹을 빵을 구하고 그를 지켜줄 것으로 생각되는 칼을 구하는 것입니다.

3절,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8절,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그를 생명을 지켜줄 빵과 칼만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정작 찾아와서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만 구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것이 나를 살릴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정말 먼저 기도하고 영적인 힘을 얻고 하늘의 지혜를 얻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을 얻는 그런 것이 아닌 그냥 먹고 살 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렇게 주십니다. 그가 원하는 빵도 칼도 다 얻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더 신앙이 성숙해지니 결국 그것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빵과 칼이 의미하는 것

그를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 분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빵을 얻었지만 그것은 일순간 용이하게 쓰일 수 있지만 금방 없어지고 또 다시 구해야 합니다.

칼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칼이 다윗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그 칼을 오히려 도망 다니는데 불편했을지 모릅니다.

더욱이 그 칼이 무슨 칼입니까? 그것은 칼과 창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만이 승리를 주신다는 신앙고백이 담긴 칼입니다. 골리앗이 칼을 들었을 때 다윗의 손에는 칼이 없었습니다(17:50). 골리앗은 그 칼을 쥐고 큰소리치다가 죽었습니다. 칼도 없는 다윗에게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칼이 없던 다윗으로 하여금 무장한 골리앗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다윗이 칼을 잡습니다. 다윗은 그 보다 도 좋은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9절).

다윗이 지금 얼마나 신앙적으로 지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빵으로 상징되는 경제력, 칼로 상징되는 군사력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는 이 세상을 봅니다. 경제와 국방이면 안전하고 평안한 나라가 될 것처럼 착각하고 살 수 있습니다.

빵과 칼이 아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이 다윗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빵과 칼에 초점을 맞추지 마십시오.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사람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사람을 주신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사람을 의지할 때가 있습니다. 여지없이 하나님은 그 자세들을 깨주십니다.

다윗도 이렇게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렇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아도 악한 사울에게 도망 다녀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자 그의 영적 상태는 약해진 것입니다.

이 빵과 칼을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다윗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2절,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8절, “삼상21: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그는 사울왕의 비밀 임무를 수행중이라든가 일이 급해 칼도 가지고 나올 수 없었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빵과 칼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도운 제사장과 그 무리 무려 85명이 뒤에 22장에서 죽게 됩니다.

뒤에 가면 다윗은 또 거짓말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더 큰 곤욕을 치릅니다. 연약한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들도 빵으로 상징되는 생존을 위한 것들을 위해 또 칼로 상징되는 우리의 힘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아닌지요?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제사장

그러면 이번에는 다윗에게 빵을 준 제사장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이 이 사건을 율법의 정신이 아닌 문자에 얽어 매여 사는 바리새인들에게 인용하시면서 중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마태 12:1-7).

이 아히멜렉 제사장은 놀라운 자세를 가졌습니다.

분명히 그 진설병을 제사장만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배고픈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먹게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규범을 생명처럼 여기는 자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빵으로 상징되는 배고픔의 문제와 칼로 상징되는 안전의 문제로 도움을 청할 때 아히멜렉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줄 수 없는 것이지만 계산하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히멜렉입니다. 나중에 아히멜렉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죽습니다. 악한 사울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빵과 칼을 구하는 다윗의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우리들에게 적절하게 도전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