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책?(삼상27:1-12)
2004.09.17 06:13
“상책?”
< 사무엘상 27:1-12 >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잘못된 생각을 상책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것은 다윗의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나는 무엇을 상책으로 여기는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생각하기를”
1절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생각은 사단의 중요한 공격 대상입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생각이 건전해야 합니다.
그 생각은 그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육신을 좇으면 육신의 생각을 영을 좇으면 영의 일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롬8:5-8).
다윗이 지금 육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안전을 생각합니다. 그는 안전보다 의를 생각하던 사람 아닙니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울을 죽였어야죠. 그러나 갑자기 그는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 육신의 생각에 빠진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잘못된 생각이 나의 마음에 자리 잡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망하리니”
1절,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다윗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이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시고 붙들어주셨는데 갑자기 불안감이 찾아왔습니다. 패배주의와 불신앙의 생각이 그를 지배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두렵기 시작합니다.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의 경우 이제 그 동안의 모든 고난에서 구원받을 날이 다가 왔는데 이런 걱정에 빠진 것입니다. 승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윗은 걱정의 늪에 빠진 것입니다. 사울이 곧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2년만 견디면 사울의 위협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다윗은 많이 지친 모양입니다.
상책인 줄 알고 찾은 블레셋
두려움에 사로잡힌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으로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절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블레셋으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요?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사울은 블레셋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다윗은 이런 점에서 착안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상책으로 보였습니다. 다윗을 블레셋으로 피하면 사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성공하긴 했습니다.
1절에서 다윗은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했는데 정말 그렇게 됩니다.
4절하,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27장 이후 다윗은 사울을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리는 다윗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중요한 순간마다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사울이 치러올지,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넘길지 등을 여호와께 묻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기서는 여호와께 묻지 않습니다.
27장 이하에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29장에 가서 위기를 만나면서 기도합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보다 위험한 것이 세속적 자세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원리를 좇습니다. 이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세속적 경영 마인드, 세상의 마케팅 전략을 들고 교회를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상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블레셋왕의 은혜를 구하는 다윗
5절,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누구의 은혜를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블레셋 왕의 은혜를 구하는 다윗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당장은 성공했습니다. 블레셋 왕의 은혜를 입어 그는 시글락을 얻었고 그 곳에서 16개월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7절).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의 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사람의 은혜를 입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기도했더니 사람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만 붙들면 함정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영적 자긍심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립니다. 세상에 빌붙어 세상의 이익을 얻고 싶어 이렇게 비굴해지는 것입니다.
노련한 거짓말
이어지는 다윗의 위기를 보십시오.
다윗의 거짓말입니다(8-11절).
그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 성읍을 침노하고 생필품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왕에게도 그것들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등을 치고는 유다 땅을 침략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머리를 짜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하여 블레셋 왕은 다윗을 신임하게 되었습니다(12절).
그런 다윗이 1년하고도 4달을 블레셋 왕의 배려로 시글락에 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철저한 위장 때문이었습니다.
심리학자 롤로 메이(Rollo May)는 “인간은 길을 잃었을 때 더 빨리 뛰어가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길을 잃은 다윗은 더욱 빨리 잘못된 길로 달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짓말과 위선으로 살아남으려는 타협이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섰으면 빨리 돌려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더 빨리 깊은 늪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어떻게 됩니까?
자신이 생각한 상책대로 행동하므로 성공하는 것 같지만 더욱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28장으로 넘어가면서 다윗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다음 주일에 우리가 그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상책으로 생각합니까?
두 가지로 정리합시다.
하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정직해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내가 교묘하게 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내가 지금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 다윗과 같은 것은 아닌지 점검하십시오. 다윗 주에 이로 인해 다윗을 난처하게 만든 깊은 수렁을 살피겠습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4 | 아름다운 마무리(삼상31:7-13) | 관리자 | 2004.11.04 | 2671 |
53 | 슬픈 결말(삼상31:1-6) | 관리자 | 2004.10.28 | 2239 |
52 | 변장한 사울(삼상28:3-20) | 관리자 | 2004.10.14 | 1987 |
51 | 같이 분배할지니라(삼상30:21-30) | 관리자 | 2004.10.08 | 1856 |
50 | 소리높여 우는 다윗(삼상30:1-10) | 관리자 | 2004.09.30 | 2170 |
49 | 너는 밝히 알라(삼상28:1-2,29:1-1) | 관리자 | 2004.09.23 | 2145 |
» | 상책?(삼상27:1-12) | 관리자 | 2004.09.17 | 2006 |
47 | 이 일이 선치 못하도다(삼상26:12-16) | 관리자 | 2004.09.10 | 1995 |
46 | 다시(삼상26:1-12) | 관리자 | 2004.09.02 | 2228 |
45 | 열흘 후에(삼상24:36-38) | 관리자 | 2004.08.23 | 2033 |
44 |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삼상 24:8-22) | 관리자 | 2004.08.17 | 2190 |
43 | 마음이 찔린 다윗(삼상24:1-7) | 관리자 | 2004.08.11 | 2708 |
42 | 황무지에서 주신 은혜(삼상23:15-28) | 관리자 | 2004.08.05 | 2236 |
41 | 그일라를 위하여(삼상23:1-14) | 관리자 | 2004.07.29 | 2158 |
40 | 사울의 칼과 도엑(삼상22:6-19) | 관리자 | 2004.07.23 | 2550 |
39 | 두려워하는 다윗(삼상21:10-22:5) | 관리자 | 2004.07.11 | 2032 |
38 | 빵과 칼(삼상21:1-9) | 관리자 | 2004.07.08 | 2003 |
37 | 좋은 친구(삼상20:1-17) | 관리자 | 2004.07.02 | 1982 |
36 | 다윗 구하기(삼상19:11-24) | 관리자 | 2004.06.24 | 1830 |
35 | 다윗과 함께 계신 여호와(삼상18:12-30) | 관리자 | 2004.06.18 | 20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