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어두운 이삭
창세기 27:1-4
이삭이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하는 모습이 본문에 나옵니다. 결국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축복하게 되었지만 이런 과정에서 이삭의 한계를 보게 됩니다.
나이 많은 이삭의 문제
나이가 많은 이삭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나이 들고 눈이 안 좋아지는 것은 인간의 한계입니다. 자연스러운 노화과정입니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질그릇처럼 약한 것이 인간의 육체입니다. 언젠가는 부서지고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 인생이 먼지 같은 존재임을 고백했으며 풀과 같고 그 영광도 풀의 꽃같음을 노래했습니다(시 103:14-15).
사람은 그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한계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죽고 이삭도 그렇게 약해졌습니다. 연약한 인생입니다.
아울러 살다보니 생각지 못한 인생의 문제가 닥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겸손해지도록 하기 위함이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우울해지고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잘 수납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그 때부터 경험할 수 있습니다.
눈이 어두운 이삭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삭은 죽기 전에 그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할 계획을 세우고 에서에게 준비를 시켰습니다(2-4절) 에서가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오면 그것을 먹은 후 죽기 전에 마음껏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눈이 보이지 않아 결국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속아서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나이 들어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눈이 약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나이 많아 늙은 이삭의 육신의 눈이 아닙니다. 이삭이 정말 어두웠던 것은 영안이 어두웠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에 눈이 어두웠다는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삭의 축복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로서 그 축복권이 계승되는 그런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 복을 누구에게 계승시키기를 원하시는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맏아들이라는 단순한 원칙,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대로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 더 나아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에게 축복하기 전에 먼저 좋아하는 음식을 해오라고 요구했습니다. 육신의 욕구부터 채우려는 이삭의 영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이삭은 누가 큰 복을 받을 자인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맏아들이 동생을 섬기는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이니 진정한 복은 차남인 야곱에게 이어질 것을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이삭은 이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을 따랐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눈이 어두웠습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워 아들에게 속고 영안이 어두워 잘못된 판단을 했습니다.
영안이 열린 야곱
뒤에 가면 야곱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도 나이 많아 늙었을 때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안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약삭빠르게 욕심을 따라 살던 야곱이 나이 들어서는 영적으로 깊어졌습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지 않지만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의 앞 날에 어떻게 될지는 선지자적 혜안을 가지고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48장에 보면 눈이 보이지 않는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할 때 앞에 서있는 자가 누군지 알았을 뿐 아니라 누구에게 오른손의 축복을 해야 할지를 본명하게 알았습니다(48:10-14). 그래서 야곱은 장자가 아닌 차남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었습니다. 깜짝 놀란 요셉이 아버지에게 손을 잘 못 얹었다고 말하자 야곱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48: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이 말씀대로 동생 에브라임이 형 므낫세보다 더 큰 복을 받습니다.
아울러 49:1-28까지는 야곱이 열 두 아들들의 앞날을 내다보며 축복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선지자적인 혜안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열 두 아들들에게 적절하게 그들의 앞날을 예언하며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매우 뛰어난 영안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눈을 떠야
바르게 눈 떠야 합니다. 일찍 눈뜨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눈 뜨십시오.
우리의 눈이 어두워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에 밝으면 눈도 밝습니다(시 19:7-8).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밝은 눈을 가지고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바른 선택이 가능하게 합니다.
이삭의 경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 뜻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음에도 그 말씀을 가슴 속에 담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눈은 어두웠습니다.
어느 길이 빠를지 아니면 시간이 더 걸리는 길인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길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영안이 열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쪽이 이익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어느 편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것인지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안이 환하게 열리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눈이 밝아지면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보니 감사가 넘칩니다. 두려움과 번민이 사라집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세상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현실에 둘러싸였어도 정말 중요한 것이 보입니다. 세상 염려와 근심이 우리 눈을 어둡게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불안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세상과 그 문제가 아닌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의 근심과 염려는 물러갑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는 순교 직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돌로 치는 자가 무섭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행 7:55-56). 하늘이 열렸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고 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놀라운 세계를 보면서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엘리사 선지자 이야기가 열왕기하에 나옵니다. 그는 영안이 열린 사람입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 선지자를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내 그가 머물던 도단 성을 완전히 포위하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며 평안했습니다(왕하 6:16-17).
우리가 이 세상의 걱정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송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현실에 빠져 주저앉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의 뜻에 눈을 뜹시다.
영안이 열려 바른 선택하며 살고 눈을 떠서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에 세상이 두렵지 않고 이 세상의 근심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감사와 찬송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