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벧엘 체험
창세기 27:10-22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복을 가로챈 야곱의 험악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는 야곱은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11-13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도망하는 야곱은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줄이 끊겼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줄이 연결되었습니다. 하늘과 닿은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그 사다리 위로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끊겼지만 하나님과 하늘과는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돈줄, 인맥 다 끊겨도 하나님과의 줄이 끊기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야곱은 자기를 위해 대신 저주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하던 어머니를 떠났습니다. 그 곁에 누구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은 세상과의 연결이 끊기면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직도 잡을 것이 많고 기댈 것이 많으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는 것입니다. 든든한 어머니는 야곱이 하나님만을 붙드는데 오히려 방해였을지 모릅니다.
나타나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집에 거할 때는 이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뒤에 가면 요셉 이야기가 나옵니다. 37장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팔립니다. 그리고 그는 애굽으로 갑니다.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가서 외로운 인생을 경험합니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말씀이 39장에서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39:2,3,21,23).
나와 함께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누구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특히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서 계셨습니다.
야곱이 누워 자는 시간에 하나님은 서 계셨습니다.
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우리가 누워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서서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의 허물과 연약함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야곱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은 후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의 죄로 인해 이렇게 빈들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격려하십니다. 야곱의 행위를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지라도 책망하고 삶을 바꾸지 않는 한 너를 도와주지 않겠다고 해야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로 우리가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순간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시고 붙드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아울러 그것은 관계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못해도 사랑하듯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분의 언약 안에 들어간 야곱에 대하여 끝까지 놓지 않고 계신 것입니다. 야곱과의 관계 때문에 끝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미 야곱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은혜 주십니다. 죄를 짓고 도망하는 야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를 고쳐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비전
아울러 이렇게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비전을 주셨습니다.
14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자손이 티끌처럼 많아진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계승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울러 가장 중요한 비전을 주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진정한 복이 이것입니다. 나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이 많고 내 덕 보는 사람 많은 것이 복입니다. 남의 덕 보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내 덕 보게 삽시다. 그런 비전을 챙기십시오. 그것이 꿈이고 그것이 기도제목이아야 합니다. 도와줄 사람이 많은 것이 복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기를 바라기보다 도와줄 사람이 많은 것을 기대합시다. 큰 사람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 복 받게 합시다. 그런 비전을 놓치지 맙시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 돈 버는 이유, 공부하는 이유가 그것이어야 합니다. 내 꿈이 이렇게 될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벧엘
이런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고백합니다.
16-18절,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그가 누워 자던 곳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 동안 아버지의 집에 살며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누렸습니다. 그 곳이야말로 야곱에게 편안한 보금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곳을 잃고 그를 붙들어주는 든든한 힘과 모든 것이 끊긴 그에게 새로운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주시고 격려하시는 그곳이 벧엘이 됩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그가 하나님의 집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공간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그곳이 벧엘입니다. 천국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공간적 개념보다는 함께 하심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경험한다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야곱은 장막을 벗어났고 들판에서 돌을 베게 삼고 잠을 자는데 벧엘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벧엘을 체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벧엘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원하는 야곱
20-22절,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하나님을 체험한 후 드디어 하나님을 온전하게 따르고 또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 성숙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체험하면 그 관계는 깊어지고 신앙은 구체적으로 성숙합니다. 하나님께 뭔가 얻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뭔가를 하겠다는 것은 야곱에게서 대단한 변화입니다. 야곱은 서서히 성숙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두 번째 십일조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소돔을 위한 전투에서 승리한 후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드렸습니다. 그것이 첫 십일조이고 여기 두 번째 십일조가 야곱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율법에 나오기 전에 벌써 십일조 전통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이 있을 때 십일조는 스스로 드려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내게 경험된 벧엘이 있었습니까? 각자의 벧엘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벧엘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에서 정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위기도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회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런 체험이 우리를 든든하게 세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