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는 것들
창세기 30:1-15
야곱이 사랑한 여인 라헬, 그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임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니는 벌써 네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라헬은 자식을 낳지 못해 애가 탑니다. 이런 라헬이 그 해결을 위해 애쓰지만 그것들은 결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남편
아무리 힘있는 남편이라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식은 남편이 낳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라헬은 남편에게 매달렸습니다.
1절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그러자 야곱이 말합니다.
2절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야곱의 말이 옳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을 남편에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라헬을 사랑해도 이것은 해 줄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난 남편도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능력이 뛰어난 부모도 해 줄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의 한계를 빨리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붙들 수 있습니다.
여종
남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잘 아는 라헬은 다른 방법을 쓰게 됩니다. 자신의 여종을 통해 자식을 가져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 흔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보았지만 아브라함도 16장에서 그런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라헬도 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식을 낳습니다(3-8절).
단과 납달리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라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자기 여종을 통해 낳은 아들이지만 자기 자식일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레아도 자기 여종을 통해 자식을 더 낳는 결과만 만들었습니다(9-13절). 레아도 라헬처럼 자기 여종 실바를 통해 다시 두 아들을 낳습니다. 갓과 아셀입니다.
라헬은 이렇게 여종을 통해 자식을 낳기는 했지만 만족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자식을 얼마나 낳고 싶었겠습니까? 그는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환채
그러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새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합환채라는 식물이었습니다.
14절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합환채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습니다. 임신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합환채가 레아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라헬은 그 합환채에 욕심을 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라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오히려 레아가 야곱과 동침하고 다시 아들들을 낳습니다.
15절,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그래서 레아는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더 낳습니다(16-21절). 잇사갈, 스불론 그리고 디나입니다.
라헬은 레아의 합환채를 가로챘으나 임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합환채를 양보한 레아가 임신을 하고 세 아이를 더 낳은 것입니다. 해결책은 합환채가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합환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무엇인가를 통해 인생을 열어보고자 하는 그것이 합환채입니다. 그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이 들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답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시는 결론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편의 사랑을 받아도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라헬처럼 사랑을 받은 여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안됩니다. 여종을 통해 자식을 낳는 것은 성공했으나 그것이 라헬이 직접 자식을 낳는 것 같은 만족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합환채를 욕심내서 그것을 의지해보지만 역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민 속에서 어쩔 줄 모르던 라헬을 생각해주시므로 해결되었습니다.
22-24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해 주시니 그렇게 기다리던 라헬이 드디어 임신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요셉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35장에서 비록 죽게 되지만 막내 베냐민을 라헬이 낳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해주시니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사무엘의 탄생 역시 그랬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을 안고 살았던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해주시므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습니다(삼상 1:4).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특별히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남편 엘가나는 얼마나 한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큰 힘이 되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엘가나는 자기 자신이 열 아들보다 낫지 않냐며 위로하기도 했습니다(삼상 1:8). 그러나 그런 남편으로도 한나가 만족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시어 사무엘을 주셨던 것입니다.
삼상 1:19-20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인 양 그렇게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전능하게 보이는 남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저런 인간의 방법, 또 세상의 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과학 기술의 발달은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생긴 인간의 재난이 얼마나 많습니까? 17,8세기부터 인간의 똑똑한 머리로 만들어낸 수많은 과학문명이 오히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폭염과 온갖 재난을 불러온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에 결코 도전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부족함 없이 사는데 행복이나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을 갖춰도 하나님이 없다면 결코 만족도 행복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아도 하나님만 붙들고 살면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답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분을 바라보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놀라운 역사를 반드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어떤 것도 없어야 합니다. 되지도 않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방해할 뿐이고 시간만 지체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는 허망한 것들에 기대지 마십시오. 돈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막강한 권력을 가져도 안 되는 것은 결코 안 됩니다. 뛰어난 학문적 실력을 가져도 풀 수 없는 일들이 많은 법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고 그 분을 의지합시다.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처럼 의지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