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어리 야곱
창세기 30:25-31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약속한 14년이 지났습니다. 라헬을 위하여 14년을 섬긴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라반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라반이 만류합니다. 결국 20년을 채웁니다. 그러면 라반이 야곱이 계속 자기와 함께 거하기를 원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27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라반이 야곱을 붙잡은 이유는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복 주셨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은 여호와께서 주십니다.
복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오지 않습니다. 오직 복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복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이 오는 통로가 있습니다.
“너로 말미암아”
야곱을 통해 외삼촌 라반에게 복이 임했다는 것을 라반은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을 몰랐다면 라반이 야곱을 보냈을 것입니다.
야곱이 집에 온 후 라반은 모든 것이 잘 되었고 그것이 여호와께서 야곱을 통해 자기 집에 복 주신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야곱을 라반은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야곱 때문에 라반이 복을 받은 것은 야곱도 언급합니다.
30절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라반의 집안은 야곱이 오기 전과 야곱이 온 후로 확실하게 구분됩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온 후에 야곱이 오기 전보다 라반의 재산이 불어났습니다. 야곱의 발이 이르는 곳마다 복이 임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야곱은 복덩이였습니다.
야곱이 전에는 형 에서에게 “내가 너 때문에 복을 잃었다”는 말을 듣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습니다. 외삼촌에게 “너로 말미암아 내가 복 받았다”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야곱도 그 자신을 통해 누군가가 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야곱
야곱을 통해 라반에게 복이 임한 것은 야곱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 수 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31:38-40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야곱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부지런하게 수고했습니다. 그의 수고는 라반을 부자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보시고 라반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산 야곱은 당장은 자기 손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라반보다 더 큰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31: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복의 통로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
야곱의 아들 요셉도 동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니 그로 말미암아 복이 임했습니다.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복이 임했습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복이 임하는 통로 역할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통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하기보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일하는 사람입니다.
엡 6: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렇게 살아서 회사가 잘 되고 사회가 건강해 지고 누군가가 나를 통해 밥 먹고 살고 유익을 누리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산다면 진정으로 주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나와 열심히 일하는 것만 주의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세상에서 더 열심히 살면서 누군가에게 유익되게 하는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축복이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내가 뭔가를 줄 수 없다면 축복이라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돈도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입만으로도 가능하고 마음만으로도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원수를 향해서도 축복하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산상설교의 중요한 원리입니다(마 5:44-45).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나 평안을 빌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합당하지 못하면 내 머리로 돌아올 것입니다(마 10:12-13).
목회자로 사는 기쁨 중 하나가 축복하는 역할입니다. 늘 축복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입에 축복을 담고 사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렇게 살면 내가 복 받습니다. 하나님이 복주시지 않겠습니까? 축복의 부메랑입니다.
오늘 야곱으로 말미암은 복을 살폈습니다. 야곱은 복덩어리였습니다. 나로 말미암은 복을 만들어 갑시다. 내가 누군가에게 복이 됩니다.
교회가, 이웃이, 사회가, 남편이, 아내가 부모가, 자녀가 늘 “너로 인하여” 복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삽시다.
아울러 우리 교회로 인하여 이 세상이 복 받게 합시다.
교회가 끊임없이 나누고 베풀고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교회로 인하여 농어촌 교회가 힘을 얻고 우리 교회로 인하여 작은 교회가 일어서게 합시다. 세계 곳곳에 선교사를 보내고 물을 파주고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먹고 살게 하는 일이 교회를 통해 일어나게 합시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도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무한 경쟁에 빠져 있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팽창주의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에 의하여 주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주는 나라가 되어 있지만 훨씬 더 우리나라 덕 보는 나라가 많이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비전을 가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기적 욕망만 채워서는 안 됩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가 복 받게 하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의 창고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실 사람, 복 주실 교회, 복 주실 나라를 찾습니다. 그 분의 마음에 드는 대상에게 놀랍게 채우실 텐데 주는 자에게 주실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야곱이 받은 신비한 복을 살펴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