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여자 그리고 그 남편
창세기 3:1-8
인간이 죄를 짓는 장면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최고의 환경 에덴에서 살게 하셨는데 결국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맙니다. 모든 복을 잃습니다. 어떻게 무너지는지 살펴봅시다.
에덴 - 소통의 세상
재미있는 것은 본문에 뱀과 여자의 대화가 나옵니다(1-4절).
뱀과 사람의 대화가 신기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에덴은 짐승과 사람도 소통이 가능한 세상이었습니다. 낙원이란 누구하고도 편안하게 대화가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도 언제든지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사람이 기쁨으로 만나 대화를 하는 그런 동산이 에덴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 왕국의 모습을 보시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회복시킬 새 하늘 새 땅은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염소, 송아지와 사자, 암소와 곰이 함께 하며 독사와 어린아이가 함께 장난할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사 11:6-8). 그것이 회복된 낙원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창조하셨는데 인간의 죄가 서로의 마음 속에 계산이 깔리고 가시가 숨어있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낙원처럼 된다는 것은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고 이해가 되고 풀어주시는 말씀 앞에 내가 기쁨으로 따르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낙원입니다. 고집, 편견이 낙원을 파괴합니다. 성도들 사이에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고 소통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낙원이 되는 것 역시 이런 소통입니다. 부부가 서로 늘 즐거운 대화가 있고 격려와 이해가 충만할 때 낙원이 됩니다.
간교한 뱀
인간이 죄를 짓는데 등장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간교한 뱀입니다. 그가 여인을 유혹하였습니다.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간교한 짐승이 어찌 있겠습니까?
문제는 사탄이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뱀은 이용당한 것입니다. 사탄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뱀이 사탄이겠습니까? 이후로 뱀은 사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탄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베드로도 이용당했고 “사탄아 내 뒤로 물라가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16:21-24).
베드로가 사탄은 아니지요?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사탄에게 이용당하면 가족이나 친구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내가 사탄에게 틈을 주면 나도 어느새 사탄의 입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주저앉히기도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던 새 가족을 밀어내거나 누군가에게 다시는 교회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늘 조심해야 합니다.
간교해진 뱀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것을 여인이 먹게 만듭니다.
하지 말라는 것, 그것을 하도록 권유하고 그것이 꽤 즐거울 것 같고 행복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방법이지만 돈을 먹게 만듭니다. 온갖 죄악을 저지르게 합니다.
뱀에게 넘어간 여자
뱀은 여자를 공략했습니다. 쉬운 공격 대상을 찾은 것입니다. 나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은 나의 약점도 잘 압니다. 나의 어떤 부분을 흔들면 넘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그것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뱀이 간교하다는 것은 그만큼 지혜롭다는 것입니다(마 10:16).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자들보다 지혜로워야 합니다.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은 여자가 결국 무너집니다. 말씀에 굳게 서지 못하므로 무너집니다. 뱀을 통해 사탄은 말씀을 흔들었습니다.
여자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지 못한 말씀을 흔들어댔습니다.
말씀을 붙드는 것 외에 사탄의 공격을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이 여자 하와는 말씀을 굳게 붙들지 못했습니다.
결국 뱀이 권하는 대로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을 잡았습니다.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말씀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2:17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였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그 말씀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죽을까 하노라”로 기억합니다.
그러자 뱀은 완전하게 반대로 바꿉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교회 생활하고 말씀 공부를 했는데 그 말씀 공부한 것 가지고 공격합니다. 확실하게 서있지 못하면 ‘그런가’ 하다가 따라갑니다. 코 꿰어 끌려갑니다.
새로운 말씀이라고 생각된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여자는 결국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고 맙니다.
함께 있는 남편
안타깝게도 여자가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먹고 끝나지 않습니다.
마귀는 한 사람을 무너뜨리면 전체를 삼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한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결국 남편도 무너집니다.
마귀가 손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여자가 알아서 합니다.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자가 먹고 함께 있는 남자, 즉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혼자 죄를 지으면 불안합니다. 누군가 함께 해야 합니다. 공범을 만들어야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집니다. 죽어도 혼자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줍니다. 최악의 밥상을 차려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 주어야 하는데 죽을 것을 쥐어 주고 먹도록 권합니다.
그러자 남편도 먹고 맙니다. 여자가 무너지는데 곁에 서서 남편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남편은 계속 곁에 있었습니다. 뱀에 의해 여자가 위험해지는데 지켜보면서도 여자를 보호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했는데 남자는 여자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은 돕는 역할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흔들릴 때 붙들어 주라고 함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를 지켜주지 못하니 아담도 무너집니다. 함께 있게 하셨는데 함께 죽는 것입니다.
함께 죽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배우자들이여, 내 아내를, 내 남편을 지켜주십시오. 흔들리지 못하게 지켜주십시오.
부모들이여, 자녀들을 지켜주십시오. 곁에 있게 하신 것은 잘 지켜주라는 것입니다.
불통의 세상
결국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부끄러움을 알게 된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7, 8절). 결국 불통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뱀, 여자 그리고 남자. 서로 소통은 하지만 죽을 소통만 합니다. 뱀의 뒤에 있는 사탄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여자를 구하지 못한 남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환경과 관계를 결국 건강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 죽고 맙니다. 뱀, 여자 그리고 남편 사이에 사탄이 파고들어 관계를 무너뜨리고 병들게 했습니다. 말씀을 붙드는 것이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낙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