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흙입니다
창세기 3:9-19
죄를 지은 인간은 그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짐승들과 같은 재료로 창조되었지만 그 본질이 전혀 다른 고귀한 사람이 원재료인 흙으로 전락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너는 흙이니”
하나님께서는 19절에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원래 흙으로 만드셨지만 흙이라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사람은 재료가 아닌 그 재료에 덧입혀진 하나님의 형상과 그 생기로 인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그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동차가 부숴지면 고철이 되고 냉장고가 기능하지 못하면 그냥 폐가전제품이 되듯 사람의 고귀한 가치인 하나님의 형상과 그 생기를 잃으면 흙과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다움과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흙의 지저분한 성분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흙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신 것은 그 죄의 결과입니다.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은 흙과 같은 존재입니다.
두려움
흙처럼 초라해진 인생의 모습을 봅시다.
에덴에서의 그 고귀한 아름다움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우선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9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셨지만 아담은 벗은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숨었다고 답합니다(10절).
재료인 흙과 하나님의 형상의 갈등입니다. 부조화로 인한 삐걱거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죄 중에 헤매며 살면 하나님 앞에 나와 앉는 것이 불편합니다. 죄를 짓고 해결하지 않으면 예배가 되지 않습니다.
흙이 지닌 온갖 불순물들
원망과 불평이 뒤따라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하와를 원망하듯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12절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2:23)이라 하던 하와를 죄의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흙으로 돌아간 인간의 지저분한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남편 때문에 누린 것이 얼마나 많은데 원망 거리를 찾습니다.
남의 탓하고 원망하는데 익숙합니다.
하와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는 뱀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13절).
자신의 죄라는 고백은 아담도 하와도 하지 않습니다.
죄인들의 특징이 회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핑계, 원망, 불평이 가득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뱀을 원망합니다.
그 속에는 여자를 주신 하나님, 뱀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들이 깔려 있습니다.
이것이 대를 잇습니다.
원망과 불평, 관계의 불편이 대를 이어 갑니다.
4장으로 가면 형제 살육이 나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입니다.
예배를 자기가 잘못 드리고 동생을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흙먼지 날리며 사는 인생
흙의 먼지들이 펄펄 날립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먼저 해산의 수고가 생겼습니다.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고귀한 생명이 태어나는데 왜 이렇게 고통이 따르게 됩니까?
흙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복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고통이 생겼습니까? 그 복에 불순물이 끼어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아픔이 온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이 새끼를 낳으면서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복으로서의 생육과 번성에 죄로 인한 고통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불편함도 있습니다.
16절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남편이 여자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관계가 이렇게 불편한 관계로 전락했습니다.
땀을 흘려야 먹는 수고가 뒤따릅니다(17-19절).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그 땅에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인간은 온갖 고생을 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이 뒤따릅니다(19절).
이것이 흙으로 돌아간 인간의 고통입니다.
다시 빚어주시는 하나님
그러나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흙으로 돌아간 인생에게 희망도 주어졌습니다.
회복과 치유의 희망입니다.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복음입니다.
성경에 많은 상징들이 나오는데 여기 나오는 뱀은 사탄의 상징이요, 여자의 후손은 오실 메시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실 메시야가 인간을 죄에 빠트린 사탄의 머리를 밟아 승리하시므로 인간을 죄와 사망의 덫에서 건져내시므로 치유가 되는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근원적 해결 방법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귀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그 가치를 보여 줄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흙이 아닌 보물이 되었습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흙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파괴하지 맙시다. 진정한 흙이 되어 주님의 손에 맡깁시다.
그 분이 나를 빚어 고귀한 존재로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대합시다.
사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그냥 먼지 펄펄 나는 흙으로 살려고 버둥거리지 않습니까?
그분이 새로운 형상으로 빚어주시기를 기대합시다.
그분의 예술적 감각에 맡깁시다. 놀라운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충분히 회복시켜주실 능력이 그분께 있습니다.
만드신 그분이 고치실 능력이 있고 훨씬 뛰어난 성능을 지난 작품으로 업그레이드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