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창세기 16:6-14
하갈의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께서 살펴 주셨습니다. 종으로서 주인의 아이를 임신한 채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한 여인의 처량한 형편을 살펴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도 살펴주실 것입니다.
학대당하는 하갈
6절,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기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씌우고 그 사람을 원망하는 것으로 자신의 탈출구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라 역시 그렇습니다. 하갈의 임신은 자신의 계획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라는 하갈을 학대합니다. 견디다 못해 가출할 만큼 학대를 했습니다. 물론 하갈이 주제를 모르고 여주인을 무시했습니다.
그런 하갈이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했습니다. 갈 곳도 없습니다. 무작정 도망을 했습니다. 임신한 몸으로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하갈을 하나님께서 살펴주셨습니다.
살피시는 하나님
아브라함과 사라도 하갈을 살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펴주셨습니다. 하갈은 살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가 종으로 평범하게 있을 때는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을 고통 속에서 경험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13절,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억울한 하갈의 형편을 하나님께서 살펴보고 계셨습니다.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우선 그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7-9절,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도망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여주인에게도 돌아가서 그 자리를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수하에 복종하며 조용히 있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살펴 주시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잘못된 길을 바로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펴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희망을 주신 일입니다.
하갈을 통해 태어날 생명을 보장하셨습니다.
먼저 크게 번성할 것을 보장하셨습니다.
10절,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셀 수 없을 만큼 크게 번성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다를 바 없습니다.
더 나아가 그 후손이 힘센 족속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2절,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들나귀 같은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고 모든 형제에게 대항하며 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을 품은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뒤에 가면 이스마엘은 하갈과 함께 쫓겨나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그러니 들나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후손들이 지금도 힘센 자들로 삽니다. 형제들을 대항하며 삽니다.
21장에 보면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살면서 활 쏘는 자가 됩니다(21:20). 2장에는 그 후손들 이야기가 나옵니다(25:12-18). 약속대로 강대해집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태어날 아들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이름도 주셨습니다(11절). 아들의 이름도 지어주셨습니다. 그 뜻을 밝혀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아무도 나에게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내 고통은 모른 척 할 것 같은데 높은데 계신 여호와께서 들으신다는 보장입니다.
하나님은 약자의 고통을 들으십니다. 귀를 기울이십니다.
보잘 것 없는 한 여종입니다. 그렇게 살다 죽어도 누구도 불쌍히 여기기 힘든 그런 형편의 여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펴주셨습니다. 그 고통 소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살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살펴주시는 하나님은 뒤에 21장에도 나타나 주셨습니다.
21장에서는 하갈이 이스마엘을 데리고 완전히 집에서 쫓겨납니다. 이삭이 태어났고 그 이삭을 이스마엘이 놀리다가 쫓겨납니다.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물이 떨어져 고통 속에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또 나타나 살펴주십니다(21:17-19).
브엘라헤로이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약속을 받은 후 그곳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14절,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셨음을 기억하기 위해 샘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증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체험의 증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갈을 살펴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살펴주실 것입니다. 내가 억울할 때, 지치고 힘들어 견디기 어려울 때 나를 살펴 주실 것입니다. 내 몸이 병들고 전과 같지 않을 때 좌절하지 마십시오. 나를 살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외롭고 힘들어도 주님이 나를 살펴주시면 문제를 극복합니다.
아무도 나를 살펴 줄 수 없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살피시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쳤을 때 나를 살펴주십니다.
시 139:1-10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
아울러 억울해서 잠 못 이룰 때 나를 살펴 주십니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 바라보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여종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낳은 이스마엘은 약속의 씨가 아닌 곁가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살펴주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런 우리를 더 살펴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살펴주셔서 독생자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살펴주심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나를 살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나도 하나님을 닮아 누군가를 살펴주는 삶을 살아갑시다.
어렵고 지친 사람들을 살펴주는 삶은 하나님을 닮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손을 대신하여 누군가 손잡아 주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살펴주는 삶을 삽시다. 우리 주변의 하갈을 찾아냅시다. 나 때문에 누군가 눈물을 닦고 누군가 행복해지도록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 내가 누군가를 살펴주면 더욱 나를 살펴주실 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