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벧엘로!
창세기 35:1-15
세겜에 둥지를 튼 야곱의 가정에 불어 닥친 재난은 야곱과 그 가족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여기서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셨습니다. 야곱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야곱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나타나주셨습니다. 야곱의 삶의 중요한 특징이 하나님께서 자주 나타나 주셨다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또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이 원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시다가 야곱에게 필요한 때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그를 끝까지 놓지 않으셨습니다.
28장에서 형을 피해 도망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31장에서 라반의 집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갈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32장에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야곱이 형 에서의 위협을 느끼기 전에 하나님의 군대를 통해 나타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밤새 하나님 앞에서 씨름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하시기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세겜에서 일어난 재난의 바람을 맞고 쓰러져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할 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 때 또 하나님은 나타나셨습니다.
뒤에 가면 야곱이 온 가족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갈 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서 그의 앞날을 열어주셨습니다(46:1-4).
“벧엘로 올라가라”
야곱이 궁지에 몰렸을 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해결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서는 벧엘로 올라가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야단을 치고 화를 내도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눈치 없는 사람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일까요?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돈 버는 데는 눈치가 빠른 그가 영적인 것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왜 이 지경에 빠졌는지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잊고 있던 기억을 되찾습니다.
야곱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반응합니다.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대로 그는 온 가족과 함께 벧엘로 올라가기로 합니다(3절).
말씀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나타나주십니다. 설교자의 목소리로 나타나시기도 하고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는데 나의 가슴을 저미며 조용히 깨우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사는지를 깨우쳐 줍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말씀을 들으며 우리가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
이제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는 준비를 합니다.
2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4절,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벧엘로 올라가는 것은 단순한 자리 이동이 아닙니다.
먼저 야곱의 가정의 영적 자리부터 바로 잡는 것입니다.
제거할 것을 제거하고 버릴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2절에 보면 야곱의 집안에 이방신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야곱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집안 식구들 중에 이방 신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그러나 묵인했습니다. 모른척했습니다. 단호하게 자르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하란에 살면서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습관에 많이 물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며 그들처럼 살았습니다.
이방신상, 귀고리, 그들이 입는 곳, 얼굴 화장 등에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경우가 많습니다. 부적 같은 의미입니다. 그것들을 제거한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야곱은 식구들을 정결하게 하고 옷도 갈아입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과거의 모든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간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집에 자리 잡았던 우상을 찾아내서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4절).
결국 벧엘이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가치관입니다. 신앙의 자세입니다. 내 마음에 진정한 벧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버릴 것을 버리고 갈아입어야 할 옷을 갈아입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과 가치관이 변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달라지면 내 마음의 벧엘이 이루어집니다.
벧엘에 올라간 야곱
벧엘로 올라간 야곱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습니다(7절).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하셨고 3절에서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겠다고 선언했으며 드디어 7절에서 야곱은 단을 쌓습니다.
그렇게 단을 쌓고 야곱은 다시 그곳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엘벧엘” 즉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렇게 벧엘에 돌아와 단을 쌓고 나니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복을 확인해 주십니다.
9-12절,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우선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뀐 것을 확인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바뀐 이름을 하나님께서 불러주십니다(9-10절).
아울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의 후손들이 큰 백성을 이룰 것과 야곱에게서 왕들이 태어난 이스라엘 왕국이 설 것을 약속하십니다(11절).
더 나아가 세겜에서 돈을 주고 산 땅을 포기한 채 벧엘로 올라온 야곱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땅을 야곱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12절).
야곱은 다시 그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벧엘을 다시 확인합니다(13-15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다시 그 자리를 찾읍시다. 다시 벧엘로 올라갑시다. 무엇보다 예배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로 올라가십시오.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털어버릴 것을 털어버립시다. 묻어 버릴 것은 묻읍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찾읍시다. 다시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매일 만나며 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