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
설레는 3월
어느덧 3월이다. 2024년을 맞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라니? 하긴 어디 3월뿐인가? 항상 지나간 시간은 빨리 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모두의 일반적인 모습일 수 있을 것이다.
3월! 봄이 생각난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이 든다. 추운 겨울을 떠나보내고 맞는 3월은 꽃, 향기, 나들이 등 낭만적인 단어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설레는 것이 어디 3월뿐이겠는가? 난 매일 설레는 가슴으로 산다. 내일을 알지 못하고 오늘로 맞는 것이 우리 인생이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늘 내게 다가오실지 늘 설레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으나 단언할 수 없는 내일이기에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늘 설레기 마련이다.
더욱이 내게 이번 3월은 산정현교회 부임 후 서른 번째로 맞는 것이기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서른이라고 특별한 의미가 있겠냐마는 일생을 사는 중에 삼십 년간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특별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한 교회에서 꾸준히 삼십 년을 일하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격도 이런 감격이 없을 것 같다. 난 늘 모자라고 또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함에도 한결같은 주님의 은혜가 나를 이렇게 이끌어오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삼십 년을 한결같이 나라는 목사와 함께 신앙생활 해온 분들은 그 마음이 어떨지 궁금하다. 나처럼 설렐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이젠 새로운 목사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싶다.
그러니 난 매일 설레면서 하루하루를 맞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설레지 않는데 날 보는 누가 설렐 수 있을까? 내가 매일 설레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그 신비함이다. 이젠 더 없을 것 같은 재미있고 또 흥분될 일들을 만들어 주지 않을 것 같은데 그분이 하시는 일은 매일 신기록이다. 신기록이라 생각된 일을 넘고 또 넘어선다. 그러니 설렐 수밖에.
서른 해에 맞는 3월, 신춘! 그래 문제는 결국 나다. 하나님은 늘 설렐 일을 하시는데 내가 주저앉아 ‘오늘만 같아라’라는 생각을 자주 하니 내가 문제다. 그래서 오늘 생각하는 삼월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린다. 나를 지금까지 붙들고 계신 그분이 하실 일은 늘 설레는 일이니, 난 그분에게 업힌 채 그 설렘에 살짝 끼어들겠다.









